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과학 기관 중 하나인 국제지질학연합(International Union of Geological Sciences, IUGS)에서 발표한 최근 지질 문화유산 첫 100곳 중 LA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라 브레아 타르 핏(La Brea Tar Pits)이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뿐 아니라, 윌셔대로의 고생물학 연구 부지는 지질 문화유산 등재의 영예를 얻은 지역 중 유일하게 도심에 있는 지역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라 브레아 타르 핏에 현장 학습을 다녔던 앤젤리노(Angeleno,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사람)들도 이곳의 특별함을 알게 되면 깜짝 놀라곤 하죠. 로리 베티슨 바르가 박사(Dr. Lori Bettison-Varga)는 라 브레아 타르 핏이 ‘빙하기 LA에 살던 육상 생물 화석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존된 곳’이라 설명합니다. 베티슨 바르가 박사는 라 브레아 타르 핏이 내려다 보이는 로스앤젤레스 자연사 박물관장이자 기획자입니다.
LA 한가운데 박물관 거리(Museum Row)에 있는 이 연못에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50,000년의 역사가 깃들어 있어 지질학적 의의가 높으며, 학자들과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발굴한 화석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베티슨 바르가 박사는 “기후가 변화하면서 이 일대가 어떠한 체계적인 변화를 거쳐 왔는지, 그리고 인간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있다”라며, “연구를 통해 LA 지역에도 세렝게티처럼 체구가 큰 동물들이 서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현대까지 남아 있는 생명체들을 통해 오늘날의 환경은 과거와 얼마나 다른지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LA를 지켜온 이 연못에 갇힌 동물들을 머금고 있는 끈적한 액체는 사실 타르가 아닌 아스팔트라고 합니다. 북미 원주민들은 수백 년 동안 이 아스팔트를 활용해 방수 처리를 했습니다. 여기에 동물들의 잔해가 묻혀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 잔해가 빙하기 동물들의 화석이라는 사실은 학자들 덕분에 20세기가 되어서야 밝혀졌습니다.
1907년 로스앤젤레스고등학교 교사 제임스 Z. 길버트는 학생들을 이끌고 최초로 타르 연못에서 발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LA시가 발굴 작업을 이어받았고, 그 당시 발굴된 화석들은 현재 로스앤젤레스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of Los Angeles County, NHM)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라브레아 타르 연못 발굴 현장에 있는 박물관은 1977년 개관했습니다.
먹처럼 새카만 빛으로 들끓는 박물관 앞의 호수처럼 드넓은 이 유명한 연못 앞을 지나면 마치 도로 공사 현장과 같은 냄새 같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가 된 기름이 많은 아스팔트 연못에는 수만 년 전부터 콜롬비아 매머드(Columbian mammoth), 리처드 할런이 발견한 땅나무늘보, 이리와 같은 멸종 동물들이 잠겨 있었으며, 그 잔해가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왕좌의 게임’ 팬이라면 늑대 두개골 벽(wall of dire wolf skulls)은 반드시 보아야 할 필수 코스입니다. 타르 연못에는 4,000마리 이상의 개체가 남긴 화석들이 모여 있어 학자들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박물관 부관장 및 라브레아 타르 연못 감독 에밀리 린지는 “고생물학을 연구는 보통 이 동물 한 부위, 저 동물 다른 부위, 이런 식으로 일부 부위만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한다”라고 말하며 “그런데, 여기에는 40,000년이 넘도록 이 지역에 서식했던 같은 종 수천 마리의 화석이 보존되어 있어서 현대에 생존해 있는 동물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라브레아 타르 연못에는 활성 발굴 현장의 일부로 희소성이 높은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발굴팀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ACMA) 지하 주차장 공사 중 발굴된 23박스 분량의 화석 퇴적물을 대상으로 2006년부터 프로젝트 23(Project 23)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100년이 넘도록 핏 91(Pit 91) 발굴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23에서 발굴한 화석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완성도가 가장 높은 콜롬비아 매머드 골격 제드(Zed)입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제드의 10피트(약 3.05m) 상아가 걸려 있고, 화석 연구실에 가면, 라브레아 타르 연못에서 발굴한 표본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학자들은 새롭게 발견된 화석도 연구하고 있지만 최신 기술로 기존에 발굴한 화석을 다시 꺼내 그 화석이 된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더 자세하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티슨 바르가 박사는 검치호랑이 화석 덕분에 검치호랑이가 당시에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검치호랑이가 부상으로 사망했으리라 추정했지만,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연구 결과 고관절이형성(股關節異形性; hip dysplasia)이 사인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고관절이형성증이 있던 성체였을 것”이라며, “이런 개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어야 할 테니 무리를 지어 활동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입증한 셈”이라고 설명합니다.
박물관에는 짐 헨슨 크리처 숍(Jim Henson’s Creature Shop)과 제휴하여 제작한 역동적인 멀티미디어 공연을 통해 실물 크기의 빙하기 당시 검치호랑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연합니다. 짐 헨슨 크리처 숍은 ‘더 머펫츠(The Muppets)’,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 ‘다크 크리스털: 저항의 시대(The Dark Crystal: Age of Resistance)’의 제작에도 참여한 회사입니다.
타르 연못은 아스팔트에서 복원한 대형 멸종 동물로도 유명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남부 캘리포니아에 서식하는 작은 동식물들의 잔해도 발굴되고 있답니다. 현존하는 종의 흔적이 발견되는 일은 꽤 흔합니다.
린지 부관장은 “이곳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약 18,000년 전부터 약 10,000년 전까지 지구에 있었던 온난화 휴식기 중 가장 마지막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라며, “타르 연못에서 발굴한 600종 가까운 동식물 중에서 일부분만 멸종하고, 나머지는 지금도 로스앤젤레스 분지(Los Angeles Basin)나 북아메리카 다른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라브레아 타르 연못이 지역 학자들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기후 변화의 영향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미입니다. 베티슨 바르가 박사는 “미세한 화석들을 들여다보면 그 동안 기후가 어떻게 변해왔고, 식물과 소형 동물들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라며, “그런 변화의 시기를 거치고 살아남은 개체들을 연구하면 오늘날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라브레아 타르 연못은 멸종의 구덩이인 것만은 아닙니다. 린지 부관장은 타르 연못의 이야기를 ‘생존과 극복의 일대기’라고 본다고 합니다.
라 브레아 타르 연못 이야기는 13에이커(약 0.05㎢)의 아스팔트 부지를 재건하는 마스터 플랜(Master Plan)으로 이어집니다. 로스앤젤레스 자연사 박물관은 2019년 12월 와이스 앤 맨프레디(Weiss/Manfredi)가 프로젝트를 주도하여 ‘루프 앤 렌즈(Loops and Lenses)’ 컨셉의 전시관, 공개 화석 연구실, 타르 연못을 가로지르는 보도교, 피트 91 실외 교실, 테라스, 타르 바(Tar Bar), 피크닉 및 놀이 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와이스 앤 맨프레디 공동 창립자이자 회장인 마이클 맨프레디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LA만큼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도시는 없고, 라 브레아 타르 연못만큼 LA를 대표하는 지역은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La Brea Tar Pits & Museum
5801 Wilshire Blvd.
Los Angeles, CA 90036
213.763.3499
tarpit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