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우정의 종(THE KOREAN FRIENDSHIP BELL)
산페드로(San Pedro)의 앤젤스 게이트 공원(Angels Gate Park) 내에는 무려 높이는 12피트(약 3.66m), 무게는 17톤에 달하는 종이 태평양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이 종은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에서 선물한 것입니다. 성덕대왕신종을 본떠 만든 우정의 종에는 미국과 한국의 국교를 기념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정자에 다가가면 자유의 여신과 한국 정령이 손을 잡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종이 로스앤젤레스에 자리 잡게 된 데에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인 공동체의 공이 큽니다. 우정의 종 보존 위원회(Korean Friendship Bell Preservation Committee)에서는 지금도 이 종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위원회 전무이사 어니스트 리(Ernest Lee)는 우정의 종의 설립 취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국 정부가 다가오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에 함께해주었으면 하는 저명 한국계 미국인들의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국 정부에 연락을 취했고, 한국에서도 이것이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을 한 인물 중에는 배우 필립 안(Philip Ahn)이 있었습니다. 필립 안은 1902년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에서 한국 독립투사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시민입니다. 그는 배우로서 1937년 작 상하이의 딸(Daughter of Shanghai)과 1939년 작 차이나타운의 왕(King of Chinatown)에 출연하여 애나 메이 왕(Anna May Wong)과 함께 왕성한 연기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TV 시리즈 작품인 쿵푸(Kung Fu)의 칸 사부(Master Kan) 역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을 얻은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우정의 종 보존 위원회에서는 지금도 필립 안이 우정의 종을 산페드로로 옮겨오는 데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정보는 그가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에 연락한 인물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우정에 종 설치 후보지로는 여러 장소가 꼽혔으나, 곧 앤젤스 게이트 공원 대지가 적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이 공원은 본래 1914년부터 1974년까지 미군 육군 부대였던 맥아더 요새(Fort MacArthur)에 있었으나, 부대가 폐쇄되면서 로스앤젤레스시로 이전되었습니다. 전원적인 분위기의 풍경도 매력적이지만, 당시 답사를 온 한국 공무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의 이름이었죠.
어니스트 리는 “이 부지를 선정한 공무원 중 한 분께 여쭤보니 이곳으로 낙점하게 된 쐐기못은 다름 아닌 맥아더라는 이름이었다더군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맥아더 요새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아버지인 아서 맥아더(Arthur MacArthur) 중장의 이름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을 알지요. 인천 상륙 작전을 지휘한 연합군 사령관으로 북한군을 몰아내 한국을 지켜낸 장본인이니까요.” 그러한 연결 고리 덕분에 이곳에 세워진 이 기념 종은 미국의 6·25 참전용사들뿐 아니라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함께 싸웠던 한국군 용사들을 기리는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정의 종의 영감이 된 성덕대왕신종은 77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어니스트 리는 성덕대왕신종에 대해 “천 년 가까이 보존된 종 중 세상에서 가장 큰 종으로 꼽힙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였던 당시에도 성덕대왕신종의 모방품을 만드는 데에는 원본 못지않은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종 하나를 만들기 위해 무려 아홉 명의 종 장인이 거의 한 해 동안 작업에 매달렸고, 완성하기까지 2만 명에 달하는 작업자의 손을 거쳤으며, 한국에서 종을 완성한 뒤 지금의 앤젤스 게이트 공원에 있던 맥아더 요새 병영에 정자를 짓기 위해 또다시 한 해 동안 수많은 공예가와 작업자들이 땀을 흘렸습니다.
지금의 우정의 종은 두 번째로 만들어진 종으로, 첫 번째 종은 금이 가는 바람에 1976년 6월이 되어서야 완성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주년 기념일까지 산페드로로 옮기기에는 기한이 너무 촉박해, 결국 산페드로 대신 부산에서 독립 기념일에 타종식을 진행하고, 그 뒤 한 달 반의 여정을 거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후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은 우정의 종은 1976년 10월 3일 처음으로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타종은 마치 온 세상에 올리는 기도와 같습니다. 어떠한 언어도 필요하지 않고, 모두가 그 울림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어니스트 리는 유년 시절 가족과 함께 우정의 종을 견학하러 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년 뒤 토런스(Torrance)로 이주해 자신의 가정을 꾸린 그는 자녀와 함께 이곳에 찾아왔을 때 종을 보살피는 손길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에는 종을 관리하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 없어 난항을 겪었으나, 그는 2006년 우정의 종의 복원과 보존에 뜻을 둔 위원회에 들어갔고, 몇 년이라는 세월과 천운 끝에 종을 복원할 수 있는 기술자를 찾게 되었습니다. 위원회원 중 한 명이 우연히 오래된 잡지에서 우정의 종을 작업했다는 회사의 광고를 찾은 것입니다. 위원회는 회사에 연락을 넣었지만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한국에서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폐업한 뒤였습니다. “이대로 끝이구나 싶었어요.” 어니스트 리가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원회는 수소문하며 남겼던 음성 사서함 메시지로 한 통의 답장을 받게 됩니다. 그는 우정의 종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장인 중 생존해 있던 마지막 장인으로, 현재 은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대신 수제자가 참여할 수 있게 되어, 2012년 그의 작업팀이 10개월간 앤젤스 게이트 공원에서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우정의 종은 한 해 중 다섯 번, 새해 전날, 한국계 미국인의 날, 미국의 독립 기념일, 한국의 광복절, 제헌절에 타종 행사가 진행되며,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 진행되는 정기 타종은 대중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월간 정기 타종은 잠정 중지되었습니다.)
우정의 종은 한 번에 33번 울립니다. 어니스트 리는 타종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종소리를 듣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종소리는 마음을 맑고, 평온하고 조화롭게 만들어줍니다.
타종은 마치 온 세상에 올리는 기도와 같습니다. 어떠한 언어도 필요하지 않고, 모두가 그 울림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우정의 종이 언제나 참된 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에 닿게끔 종을 돌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