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빌트모어 로스앤젤레스: LA 아이콘의 이야기

The Biltmore Los Angeles Galleria
| Photo: Yuri Hasegawa
Gallery Bar and Cognac Room | Photo: The Biltmore

Scene from "Ghostbusters" (1984) at The Biltmore
| Photo: @filmtourismus20세기 초반만 해도 로스앤젤레스는 넓은 대지, 오렌지 농장, 그리고 풍부한 석유 자원으로 알려진 작은 도시였습니다. 1년 내내 온화한 기후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이 놀라운 날씨가 동부의 추운 겨울을 피해 영화 제작사들을 서부로 이끌었습니다. 처음에는 겨울철만 잠시 머물렀던 그들이 곧 정착하면서, LA는 빠르게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인구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LA는 여전히 미국의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젊은 도시’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가 정체성을 찾아가던 그 시기, 1923년 ‘더 빌트모어 로스앤젤레스(The Biltmore Los Angeles)’의 탄생은 “로스앤젤레스가 마침내 미국의 대도시로 자리매김했다”는 상징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 화려함과 웅장함은 도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1923년 10월 1일, ‘로스앤젤레스 빌트모어 호텔(Los Angeles Biltmore Hotel)’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전례 없는 규모의 축하 행사가 곧바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날 밤, 3,000명에 달하는 인파가 호텔로 몰려들었고, 잭 워너, 세실 B. 드밀, 메리 픽포드, 그리고 떠오르는 신예 마이라 로이 등 할리우드의 거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파티는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습니다. 하객들은 7코스 디너를 즐기며, 호텔의 갤러리아와 눈부신 볼룸 전역에서 7개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에 취했습니다. 여기에 영화 속 장면처럼 노래하는 카나리아의 합창이 더해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물론 이것이 빌트모어에서 열린 우아한 행사들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다운타운 LA는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였으며, 브로드웨이 일대의 극장가도 활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 사교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빌트모어가 있었고, 글로리아 스완슨부터 테다 바라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가장 매혹적인 스타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심지어 금주법 시대에도 호텔의 골드 룸(Gold Room)은 비밀 출입문을 갖춘 스피크이지로 운영되었습니다. 손님들은 경찰이나 언론, 파파라치의 눈을 피해 올리브 스트리트(Olive Street)로 빠져나갈 수 있었고, 이 비밀의 문은 지금도 호텔에 남아 있습니다. 그 문은 나무 카운터, 코트 걸이, 욕실이 있는 작은 방으로 연결되지만, 올리브 스트리트의 출구는 현재 벽돌로 막혀 있습니다. 또한 프레지덴셜 스위트(Presidential Suite)는 여섯 명의 미국 대통령과 왕족, 그리고 버그시 시겔, 알 카포네와 같은 악명 높은 갱스터들까지 거쳐 간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당시 대부분의 LA 지역에서 술이 불법이었던 1933년 이전까지 주류를 숨기기 위한 비밀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개관 직후부터 빌트모어는 할리우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1924년 드밀 감독의 영화 Triumph 촬영지로 쓰인 것을 시작으로, 오션스 11(1960), 스팅(1973), 차이나타운(1974), 고스트버스터즈(1984), 베벌리 힐스 캅(1984), 버그지(1991), 드라마 매드맨과 보쉬 등 수많은 작품에 등장했습니다.
1920~30년대, 빌트모어 호텔은 그 우아함과 화려함으로 사교와 축제의 중심지였습니다.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밤 문화를 즐기거나, 영화사들이 성대한 파티를 열 때마다 모두가 모이는 곳은 언제나 빌트모어였습니다. 심지어 할리우드에 위치한 그라우만 차이니즈 극장(현재의 TCL 차이니즈 극장) 개관 기념 파티 역시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1927년, 호텔의 크리스털 볼룸(Crystal Ballroom)에서 아카데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탄생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MGM의 전설적인 프로덕션 디자이너 세드릭 기번스(Cedric Gibbons)가 바로 이곳 호텔의 린넨 냅킨 위에 최초의 오스카 트로피 디자인을 스케치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실제 오스카 시상식이 빌트모어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929년 루즈벨트 호텔, 1930년 앰배서더 호텔에서 행사를 치른 뒤, 아카데미 시상식은 빌트모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시상식은 1928년 본관에 새롭게 추가된 빌트모어 볼(Biltmore Bowl)에서 열렸는데, 이는 호텔 내에서 가장 웅장한 볼룸으로 다른 홀보다 길이와 폭이 약 1/3 더 크며, 약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오스카 시상식은 1935년부터 1939년, 그리고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다시 빌트모어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할리우드의 전설들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클라크 게이블, 스펜서 트레이시, 지미 스튜어트, 게리 쿠퍼 등이 이곳에서 오스카를 수상했고, 베티 데이비스, 조안 폰테인, 진저 로저스, 클로데트 콜베르 역시 이 무대에서 영예를 안았습니다. 특히 1934년 영화 It Happened One Night(1934)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까지 모두 석권하며 아카데미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웠습니다. 클로데트 콜베르는 수상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 유니언역으로 기차를 타러 갔다가, 수상 소식을 듣고 급히 빌트모어로 돌아와 트로피를 받았다는 일화는 지금도 전설로 전해집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1920~30년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빌트모어가 ‘성지’로 불리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직접 빌트모어를 마주하게 되면, 왜 이곳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그토록 존경받는 장소인지 단번에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 호텔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호텔의 창립자 존 맥엔티 보우먼(John McEntee Bowman)은 처음부터 ‘최고 중의 최고’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뉴욕과 쿠바 등지에서 호텔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보우먼은 다운타운 LA의 명문 사교 클럽인 조너선 클럽(Jonathan Club)을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한 슐츠 & 위버(Schultze & Weaver) 건축 사무소를 고용해 자신의 걸작을 완성했습니다. 호텔 내부 장식의 예술적 완성은 이탈리아 출신의 천재 장식 예술가 조반니 바티스타 스메랄디(Giovanni Battista Smeraldi)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는 당시 이미 백악관과 바티칸이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의 장식을 담당한 인물로, 그의 참여는 빌트모어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습니다.

호텔 곳곳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르네상스의 예술적 영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래의 웅장한 볼룸 위로 우뚝 솟은 세 개의 타워는 길 건너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합니다. 건립 당시 1,000개가 넘는 객실을 갖추고 있었으며, 모든 객실에 개별 욕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호화 시설로, 빌트모어는 시카고 서쪽 지역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호텔”로 불렸습니다. 현재 랑데부 코트(Rendezvous Court)로 불리는 오리지널 로비는 마치 스페인 대성당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줍니다. 3층 높이의 공간에는 트래버틴 벽과 교차하는 아치, 그리고 높은 돔 천장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두 개의 청동 샹들리에가 천장 리브(아치 뼈대) 사이에 걸려 있고, 정교한 조각 장식들이 공간 전체를 채우고 있습니다. 벽과 천장은 24K 금빛으로 마무리된 페인트로 장식되어, 한 걸음 한 걸음이 예술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웅장한 공간을 지나 양쪽으로 펼쳐진 대계단을 따라 호텔의 중심부로 올라갔을 모습을 떠올리면, 이곳이 왜 한때 “서부 해안의 주인(Host of the Coast)”이라 불렸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됩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지나면, 가장 먼저 갤러리아(Galleria)로 이어집니다. 약 107미터에 이르는 이 긴 복도는, 양쪽으로 연결된 웅장한 공간들만큼이나 장관을 이루는 곳입니다. 이 갤러리아가 연결하는 방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공간은 ‘크리스털 볼룸(Crystal Ballroom)’입니다. 처음 건립 당시에는 단순히 “볼룸(The Ballroom)”이라 불렸고, 이후 “블루 룸(The Blue Room)”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두 개의 상징적인 오스트리아산 크리스털 샹들리에에서 영감을 받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샹들리에는 매우 섬세해 청소할 때 떨어뜨리는 대신 직원이 직접 올라가 층층이 ‘양파 껍질 벗기듯’ 세심하게 닦아야 합니다. 부드러운 빛을 내뿜는 샹들리에는 스메랄디가 한 장의 캔버스에 손으로 직접 그린 오목형 돔 천장화의 중심을 장식하며, 이 공간의 장엄함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볼룸 사방에는 크림색 기둥이 발코니와 프렌치 도어 사이에 서 있고, 방의 상단에는 천장에 닿을 듯한 세 개의 거대한 창문이 있어 웅장한 개방감을 선사합니다. 최대 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공간은, 바로 옆의 티파니 룸(Tiffany Room)과 연결해 더욱 넓은 행사 공간으로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에메랄드 룸(Emerald Room)은 다른 공간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치 사냥 로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천장은 짙은 나무 들보로 지어진 듯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이 석고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는 다양한 동물 문양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기둥 사이마다 다른 개의 그림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스메랄디의 위트가 담긴 디테일로 보입니다. 이 공간의 이름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빌트모어의 메인 다이닝룸(Main Dining Room)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르네상스 룸(Renaissance Room)으로 불렸으며, 현재의 이름인 ‘에메랄드 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의 가장 흥미로운 역사적 순간 중 하나는 1960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입니다. 이 대회가 빌트모어에서 열렸을 당시, 린든 B. 존슨의 ‘워 룸(작전실)’으로 사용된 곳이 바로 이 에메랄드 룸이었습니다. 반면, 현재 호텔의 로비로 사용되고 있는 뮤직 룸(Music Room)은 존슨의 상대이자 훗날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의 작전실이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전당대회 기간 동안, 호텔의 골드 룸에 있던 애들레이 스티븐슨을 비롯해, 캠프 간에 쉴 새 없이 오가던 전달원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골드 룸(Gold Room)은 빌트모어 100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개성 넘치는 사업가 바론 롱(Baron Long)입니다. 그는 ‘작은 사고뭉치’로 시작해 나이트클럽, 호텔, 경마 업계의 거물로 성장한 인물입니다. 그는 멕시코 티후아나에 위치한 아과 칼리엔테(Agua Caliente)라는 고급 카지노 리조트의 파트너로, 금주법 시대에 미국 상류층이 규제 없이 머물며 즐기던 전설적인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당시 어린 무용수였던 마가리타 칸시노(Margarita Cansino)가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다 발탁되었고, 그녀는 훗날 전 세계가 사랑한 스타 리타 헤이워스(Rita Hayworth)로 성장했습니다. 루이스 B. 메이어, 클라크 게이블, 진 할로, 찰리 채플린, 글로리아 스완슨 등 할리우드의 거장들이 자주 찾던 곳이기도 합니다.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된 이후, 미국 전역은 다시 자유롭게 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롱은 빌트모어를 인수해 아과 칼리엔테의 화려한 분위기를 다운타운 LA로 가져왔습니다. 원래 ‘팜 룸(Palm Room)’이라 불리던 공간은 멕시코 리조트에서 백만 달러의 베팅이 오가던 방에서 이름을 따와 ‘골드 룸(Gold Room)’으로 새롭게 꾸며졌습니다. 이후 골드 룸은 곧 도심 최고의 이브닝 칵테일 명소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 호텔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 스며든 화려한 역사와 시대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개관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빌트모어를 “사치 위에 사치가 더해진 곳(luxury heaped upon luxury)”이라고 묘사했으며, 그 화려함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원형 그대로 보존된 실내 수영장과 스팀룸, 그리고 정성스러운 리노베이션까지 더해져, 이곳에 머문다는 것은 마치 꿈같은 시간 여행과도 같습니다.

호텔에 숙박하지 않더라도, 빌트모어를 방문하는 것은 반드시 해봐야 할 경험입니다. 갤러리 바 & 코냑 룸(Gallery Bar and Cognac Room)에서 세련된 분위기의 칵테일 한 잔으로 여유로운 저녁을 즐겨보세요.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랑데부 코트(Rendezvous Court)의 애프터눈 하이티(Afternoon High Tea)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맛있는 샌드위치, 스콘, 페이스트리와 함께 정성스럽게 블렌딩한 차 한 주전자가 제공되며, 1인 $75에 샴페인 1잔이 포함됩니다.
1969년, 이 호텔은 로스앤젤레스 역사·문화 기념물(Los Angeles Historic-Cultural Monument)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빌트모어의 더 깊은 역사를 알고 싶다면, 로스앤젤레스 컨서번시(Los Angeles Conservancy)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1시에 진행하는 워킹 투어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최근 수년간 다운타운 LA는 활발한 리노베이션과 복원 작업을 거치며 다시금 주목받는 명소로 떠올랐습니다. 빌트모어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더 브로드 미술관(The Broad), 현대미술관(MOCA) 등 주요 문화 명소와 가까이 위치해 있어, 지금도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인기 있는 목적지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빌트모어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역사와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호텔 곳곳을 거닐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다양한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20~30년대에는 스크린 안팎에서 할리우드와 맺은 화려한 관계의 시작이 있었으며, 금주법 시대와 재즈 시대의 낭만이 함께 피어났습니다. 194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을 수용하며 애국적인 역할을 했고, 1950년대에는 다시 세련된 축제를 즐기려는 손님들로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함께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카멜롯의 시대’가 시작되며 새로운 이상주의의 바람이 이곳에서 펼쳐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열망과 낭만은 지금도 빌트모어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빌트모어는 시대를 초월해 우아함을 선사하는 건축 예술의 걸작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