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 스타디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10선

월드시리즈, 노히터 게임, 페르난도마니아 등 다양한 역사적 순간들에 대해 알아보세요

Clayton Kershaw clinches his no-hitter at Dodger Stadium on June 18, 2014

Clayton Kershaw clinches his no-hitter at Dodger Stadium on June 18, 2014 | Photo: Jon SooHoo


다저 스타디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홈구장으로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의 진정한 성지 중 하나입니다. 이 유서 깊은 야구장은 1962년에 개장한 이래 10번의 월드시리즈를 개최했고 다저스가 그중 4차례의 월드 챔피언십에 올랐습니다. 지난 수십여 년의 세월 동안 다저 스타디움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자들을 배출했으며, 월드 챔피언십과 노히터 게임, MVP, 사이영(Cy Young) 상 수상자 등으로 야구 경기의 역사를 장식했습니다. 또한, 이 스타디움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엔터테인먼트 스팟 중 하나로, 비틀즈 공연에서부터 교황 방문, NHL 스타디움 시리즈,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에 이르는 특별 행사도 열렸습니다. 다저 스타디움 야구 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10가지를 만나보세요.

Kirk Gibson 1988 World Series Home Run
Kirk Gibson circles the bases after his legendary home run | Photo: Los Angeles Dodgers

1. 커크 깁슨의 홈런(1988년 10월 15일)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습니다. 1988년 월드시리즈 1차전,. 9회말 다저스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Oakland Athletics)에 3대4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어슬레틱스의 마무리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Dennis Eckersley)였습니다. 다저스의 외야수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가 1루에 출루해 있었고, 다저스의 외야수 커크 깁슨(Kirk Gibson)은 당시 왼쪽 햄스트링 부상과 오른쪽 무릎이 부어오른 상태였지만 감독 토미 라소다(Tommy Lasorda)는 그를 깜짝 대타로 투입했습니다. 볼카운트는 어느새 투스트라이크 노볼이 되었으나 커크 깁슨은 투스트라이크 투볼까지 승부를 이어갔습니다. 타석에 선 깁슨을 향해 6번째 공을 던질 때 1루에 있던 마이크 데이비스가 2루로 도루에 성공했습니다. 볼카운트는 2-3 풀카운트가 되었고, 다음 투구에서 깁슨은 백도어 슬라이더를 온전히 상체의 힘만을 이용해 오른쪽 담장을 넘겼고 다저스는 5대4로 승리했습니다. 동료들이 그라운드에 몰려든 가운데 깁슨은 주먹을 높이 쳐들고 다리를 절며 베이스를 돌았습니다. 감격의 순간이 진정되자 다저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아나운서 빈 스컬리는 “사실 같지 않은 한해 동안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라고 외쳤습니다. 깁슨은 그해 월드시리즈에 다시 타석에는 오르지 않았고, 다저스는 어슬레틱스를 4대1로 제치며 사상 6번째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깁슨의 홈런은 전설이 되었고 다저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홈런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로스앤젤레스의 가장 위대한 스포츠의 역사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Sandy Koufax after pitching a perfect game, his fourth career no-hitter
Sandy Koufax after pitching a perfect game, his fourth career no-hitter | Photo: Los Angeles Dodgers

2. 샌디 코팩스의 퍼펙트 게임(1965년 9월 9일)

1965년 9월 9일 명예의 전당 멤버 샌디 코팩스(Sandy Koufax)는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습니다. 쿠팍스는 타자들을 연속 27차례나 삼자 범퇴로 처리하며 단 한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아 이 시대에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여섯번째의 투수이자 야구 역사 전체로는 여덟번째입니다. 이 경기는 샌디 코팩스의 4번째 노히터 게임으로 밥 펠러(Bob Feller)의 메이저 리그 노히터 기록인 3회를 넘어선 것입니다.  쿠팩스는 14차례의 삼진으로, 이는 퍼펙트 게임 사상 최다였습니다. 쿠팩스는 이 경기에서 113개의 공을 던졌고 그중 79개가 스트라이크였습니다.

3. 클레이튼 커쇼의 노히터(2014년 6월 18일)

클레이튼 커쇼(Clayton Kershaw)는 2014년 6월 18일 콜로라도 로키스(Colorado Rockies)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커리어 사상 최초의 노히터 게임을 기록하며 다저스 전설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내셔널 리그 사이영 상을 3차례 수상한 커쇼는 이 경기에서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15회의 삼진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상 단 한 차례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은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경기 다음날 아침 스포츠 기자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보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는 “사상 최고의 투구,” 워싱턴 포스트는 “사상 최고의 노히터 게임,” ESPN은 “야구사에서 가장 위력적인 노히터”라고 게재하였습니다. 커쇼는 7회에 유격수 핸리 라미레즈(Henry Ramirez)의 실책으로 퍼펙트게임을 놓쳤습니다. 다저스에게는 커쇼의 노히트 노런은 시즌 두 번째로, 이에 앞서 조시 베켓(Josh Beckett)이 5월 25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치른 원정 경기에서도 노히터를 기록했습니다. 커쇼의 노히터 게임은 LA 다저스 역사상 12번째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전체 기록으로는 284번째입니다.

Fernando Valenzuela signs autographs
Fernando Valenzuela signs autographs | Photo: Los Angeles Dodgers

4. 페르난도마니아의 시작(1981년 4월 9일)

다저스의 3선발 투수인 페르난도 발렌수엘라(Fernando Valenzuela, 당시 나이 20세)가 부상 중인 제리 루소(Jerry Reuss)를 대신해 1981년 4월 9일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하면서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열광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발렌수엘라가 휴스턴 아스트로스(Houston Astros)를 맞아 거둔 5안타 무실점 호투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서사시의 시작이었습니다. 입단 후 첫 8번의 선발에서 그는 7번의 완봉승, 5번의 무실점 경기, 그리고 방어율은 0.50으로 믿기 어려운 기록을 내며 모두 승리했습니다. 팬들에 의해 ‘엘 토로(El Toro)’라고 불리는 그는 곧 야구 세계의 아이콘이 되었고, L.A.에서 시작해 뉴욕과 다른 팀들로 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가공할 만한 스크루볼이 주특기인 발렌수엘라는 1981년 그는 생애 통산 6번을 출전한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 첫 번째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으며, 같은 해 메이저리그 역사상 신인상과 사이영 상을 동시에 수상한 유일한 선수가 됐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월드시리즈에서 최연소로 첫 경기를 선발로 등판한 투수가 되었고, 다저스가 1965년 이후 처음으로 양키스를 누르는데 기여했습니다. 타자로도 뛰어난 활약을 했으며 1981년과 1983년 내셔널리그 실버 슬러거 투수상을 받았습니다. 1990년 6월 29일 발렌수엘라는 세인트루이스와의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습니다. 놀랍게도 당일 오클랜드 아슬레틱스의 데이브 스유어트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노히트 노런에 이은 두 번째로, 현대 야구 사상 유일하게 같은 날 기록한 두 번의 노히트 노런이었습니다.

Sandy Koufax pitches in Game 4 of the 1963 World Series
Sandy Koufax pitches in Game 4 of the 1963 World Series | Photo: Los Angeles Dodgers

5. 1963년 월드시리즈 4차전(1963년 10월 6일)

다저스는 1963년 10월 6일 뉴욕 양키스를 2대 1로 따돌리며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저스는 이날 양키스를 격파함으로써 5년 만에 두 번째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획득했고 구단 역사상 세 번째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도 1963년 월드시리즈 4차전은 다저스가 홈구장에서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유일한 순간입니다. 다저스 투수 샌디 코팩스가 MVP로 선정되었고, 당시 경기에는 다저스의 코팩스, 돈 드라이스데일(Don Drysdale), 월터 올스턴(Walter Alston), 양키스의 요기 베라(Yogi Berra), 화이티 포드(Whitey Ford), 미키 맨틀(Mickey Mantle) 등 여려 명예의 전당 멤버들이 출전했습니다.

Dodger Stadium sunset "cotton candy sky"
"A cotton candy sky with a canopy of blue - looks good enough to eat." - Vin Scully | Photo: Jon SooHoo

6. 다저 스타디움 개장(1962년 4월 10일)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컬리세움에서 4번의 시즌을 보낸 끝에, LA다저스는 구단의 새로운 홈구장인 다저 스타디움에서 1962년 시즌을 시작하였습니다. 1959년 9월 17일 착공해 당시 약 281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다저스 스타디움은 양키스 스타디움 이후 메이저리그 구장으로는 처음으로 전액 민간투자로 건립됐습니다. 다저 스타디움은 1962년 4월 10일 개장했으며 이날 다저스는 총 52,564명의 관중 속에서 신시내티 레드(Cincinnati Reds)를 상대로 경기를 펼쳤습니다. 시구는 다저스 구단주 월터 오말리(Walter O’Malley)의 아내 케이 오말리(Kay O’Malley)가 던졌고, 다저스에서는 1955년 월드시리즈의 영웅 조니 포드레스(Johnny Prodres)가 선발로 나섰습니다. 다저스가 새로운 홈구장에서 기록한 첫 번째 안타는 명예의 전당 멤버인 듀크 스나이더(Duke Snider)의 배트에서 나왔습니다. 비록 다저스는 신시네티 레드에 3 대 6으로 졌지만 이후 102 경기를 승리하는 구단 신기록을 세우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San Francisco Giants)와 함께 내셔널리그 1위에 등극했습니다. 그 해 다저스 유격수 모리 윌스(Maury Wills)는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하였으며, 투수 돈 드라이스데일은 사이영 상을 받았습니다.

Rick Monday saves the American flag from two protesters
Rick Monday saves the American flag from two protesters | Photo: Los Angeles Dodgers

7. 릭 먼데이가 성조기를 지키다(1976년 4월 25일)

1976년 4월 25일 외야에 난입한 두 명의 시위자들이 성조기에 불을 붙이려 하려던 찰나, 시카고 컵스의 외야수인 릭 먼데이(Rick Monday)가 이를 낚아채며 팬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릭 먼데이는 이 성조기를 다저스 투수 더그 로(Doug Rau)에 전달했고 구장 내 경찰관들이 시위자들을 연행하였습니다. 릭 먼데이가 다음 이닝에서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들이 기립 박수를 쳤고, 전광판에는 “릭 먼데이, 당신의 플레이는 최고였습니다”라는 글이 새겨졌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시카고 컵스는 선수 다섯 명의 트레이드 딜로 먼데이를 다저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산타모니카에서 나고 자란 먼데이에게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셈입니다. 먼데이는 은퇴 후 1993년 다저스의 중계팀에 합류했으며, 2001년 스포츠 생중계 부문에서 에미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현재 먼데이는 아나운서 찰리 스타이너의 곁에서 162경기 전체에 대한 분석을 맡고 있습니다. 2005년 USA 투데이는 빈 스컬리(Vin Scully), 먼데이, 스타이너로 구성된 다저스의 라디오 중계팀을 메이저리그 야구 중 최고의 팀으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8. 저스틴 터너의 홈런(2017년 10월 15일)

커크 깁슨이 월드시리즈에서 전설적인 홈런을 친 지 29주년을 맞이한 날, 다저스 3루수 저스틴 터너(Justin Turner)는 9회말 끝내기 홈런을 날리며 시카고 컵스를 4 대 1로 물리쳤습니다. 터너의 홈런으로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2대 0으로 앞서갔으며 관중석을 빼곡히 채운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다저스의 선두타자인 크리스 테일러는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내 커리어 사상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저스틴 터너가 롱비치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깁슨의 홈런을 TV로 보았듯이 미래의 다저스 선수도 이러한 순간을 맞이한 후에 어릴 적 터너의 홈런을 보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Dodgers retire the numbers of Jackie Robinson, Roy Campanella, Sandy Koufax
L to R: Jackie Robinson, Roy Campanella, Sandy Koufax | Photo: Los Angeles Dodgers

9. 캄파넬라, 코팩스, 로빈슨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1972년 6월 4일)

1972년 6월 4일 다저스는 야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3인의 선수 로이 캄파넬라(Roy Campanella, 39번), 샌디 코팩스(Sandy Koufax, 32번),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42번)의 유니폼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브루클린 다저스(Brooklyn Dodgers)소속으로 보낸 10번의 시즌에서 캄파넬라는 팀의 우승에 다섯 번 기여했으며 그 중에는 1995년 월드 챔피언도 포함됩니다. 포수인 그는 올스타전에 여덟 차례나 출전했으며 내셔널리그 MVP로 세 번이나 선정됐습니다. 캄파넬라는 비극적인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1969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샌디 코팩스(Sandy Koufax)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투수 중 하나였습니다. 좌완투수인 그는 1965년 퍼펙트 게임을 포함해 내셔널리그 기록인 4회의 노히터를 기록했으며 1965    년 382 차례의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내셔널리그 시즌 기록을 세웠습니다. 코팩스는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4번이나 올랐고 월드시리즈 MVP로 2차례 선정되었으며, 세 번의 사이영 수상자 선정, 일곱 번의 내셔널리그 올스타로 선정되었습니다. , 1972년 그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1947년 4월 15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야구의 구성을 완전히 바꿔벼렸습니다. 로빈슨은 그 해에 제정된 '올해의 신인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으며 이상은 이제 그의 이름을 따서 재키 로빈슨상이라고도 불립니다. 10 시즌 동안의 커리어에서 그는 브루클린 다저의 리그 우승에 여섯 차례 기여했으며, 그 중에는 1955년 월드 챔피언에도 포함됩니다. 올스타전에 여섯 번이나 출전한 그는 MVP로 여러 차례 선정되며 1949년 내셔널리그 타격왕 자리에 올랐습니다. 재키 로빈슨은 1962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장벽을 무너뜨린지 50주년이 되는 해에 그의 등번호인 42번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버드 셀릭(Bud Selig)에 의해 메이저리그 팀 전체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됐습니다.

Dodgers catcher Mike Piazza at bat
Mike Piazza at bat | Photo: Angeles Dodgers

10. 마이크 피아자의 다저스 스타디움 장외 홈런(1997년 9월 21일)

1997년 9월 21일, 다저스의 포수 마이크 피아자(Mike Piazza)의 약 145미터 길이의 홈런은 좌측 관중석 지붕을 맞고 전광판 아래를 지나 주차장에 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피아자는 다저스 선수로는 유일하게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장외 홈런을 쳤으며, 이 구장에서 장외 홈런을 친 3명의 선수 중 하나입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날(St. Louis Cardinal)의 1루스 마크 맥과이어(Mark McGwire)가 1998년 5월 22일 우측 관중석을 넘기는 약147미터의 장외 홈런을 쳤습니다. 명예의 전당 멤버 윌리 스타젤(Willie Stargell)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Pittsburgh Pirates)외야수로 뛰던 1969년 8월 6일과 1973년 5월 9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두 번의 장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